B2B SaaS 제품을 대기업에 영업하면서 느낀 5가지
그 동안 커리어 내내 SMB를 대상으로 B2B SaaS를 세일즈하다가, 최근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을 대상으로 콜라보 초기 제품을 세일즈하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저는 PG(Payment Gateway)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하며, 주로 스타트업 / SMB를 대상으로 온라인 전자결제 시스템 영업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B2B SaaS (특히 세일즈 CRM)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Pipedrive의 국내 단독 리셀러사에서 근무하며 SMB를 대상으로 한국 파이프드라이브 세일즈 및 Customer Success를 담당했습니다.
현재는 리턴제로의 콜라보팀에서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을 대상으로 B2B AI 회의록 소프트웨어 콜라보 제품을 세일즈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아래 상황에 해당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좋습니다.
초기 제품을 고객에게 판매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영업 담당자 혹은 창업자
B2B SaaS를 대기업에 영업해야 하는 영업 담당자
SMB에서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으로 영업 타겟을 확장하는 영업 관리자
1. 고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기
어느 세일즈나 똑같지만,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에서도 고객에게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특히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일즈를 하다 보면, 고객이 제공한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 항상 맞지는 않다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온프레미스' (혹은 설치형 제품)입니다. 콜라보 제품을 세일즈하면서 여러 곳의 대기업을 만나봤고, 공통으로 문의하는 질문은 "온프레미스로 제품 제공이 가능한가요?" 혹은 "저희는 온프레미스로만 제품 도입이 가능해요"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콜라보는 클라우드 기반의 SaaS 제품이라 영업이 어렵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요. 조금만 더 깊이 파 보면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을 금방 알게 됩니다.
실제 온프레미스 제품을 요구한 곳도 조금만 더 질문을 던져보면, 이미 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온프레미스 제품만 도입이 가능하다고 한 곳에서 이미 MS Teams를 클라우드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은 부서가 촘촘하게 나눠져 있다 보니, 제품 도입 검토를 위해 여러 부서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도입 담당자는 자신의 부서 상황에 대해서만 잘 알고, 다른 부서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들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세일즈를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정확한 정보 파악을 위해 도입 담당자의 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여러 부서들의 실무 담당자들을 만나며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고 각 부서별로 검토가 필요한 사항들을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2. 내가 알고 있는 세계에 갇히지 않기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되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클라우드 서비스인데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클라우드 기반의 B2B SaaS를 사용하는 게 너무 익숙하다 보니, 내가 만나는 기업들도 당연히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을 조금만 벗어나도,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구나라는 경험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겪은 대표적인 예시는 협업툴 사용과 연동인데요. 스타트업에서는 슬랙이나 노션 등의 협업툴을 사용하는 게 너무 당연하고, 다른 제품을 검토할 때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협업툴과의 연동 여부를 검토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을 벗어나 보면, 생각보다 협업툴을 사용해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에서 슬랙 대신 이메일을 기반으로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협업툴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다른 툴과의 연동이 가능하다는 점 자체를 몰라, 연동 자체를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죠. 바꿔 말하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당연하지 않게 느끼고 고객에게 접근해야 고객의 시각에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객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제품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3. 현재가 아닌 제품의 미래 세일즈하기
비단 엔터프라이즈 대기업 세일즈에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특히 엔터프라이즈 세일즈를 경험하면서 좀더 크게 느낀 것은 반드시 제품의 미래를 세일즈해야 하고, 미래가 세일즈되지 않으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엔터프라이즈 대기업들은 모두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커스텀한 제품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세일즈하려는 제품은 대부분 커스텀 기능은 고사하고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최소조건만을 만족시킨 제품이죠. 대기업의 도입 담당자 시각에서는 최소 기능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들이 사용하기에 부족한 제품이라고 느낄 확률이 거의 100%죠.
이 인식을 해소하고 도입 담당자가 제품을 검토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품의 미래를 세일즈해야 합니다. 미래를 세일즈하기 위해서는, 우리 제품이 현재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 및 가치를 통해 실제로 얼마나 업무를 효율적으로 바꿔줄 것이냐는 기본이고, 현재 제공하는 가치를 바탕으로 제품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발전된 제품이 제공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인지까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래가 세일즈되지 않으면 도입 담당자들은 현재 출시된 제품의 상태를 기준으로 제품을 검토하게 되어, 부족한 부분이 많은 초기 제품들은 당연히 대기업에서 도입해 사용할 수 없는 제품으로 인식되는 것이죠. 제품의 현재 모습의 A to Z에 대해 세일즈 담당자가 모두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 제품의 로드맵까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도입 담당자와 한 팀이 되어 움직이기
특히 B2B SaaS를 대기업에 세일즈하는 경우 제품 기능 이상으로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콜라보의 예를 들자면, 기업의 비즈니스 회의를 타겟으로 하다 보니 기능 검토 이외에도 법무검토 / 보안검토 가 반드시 따라옵니다. 대기업의 도입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기능 검토가 끝나서 실무부서는 제품을 사용해보고 싶은데 다른 부서의 검토 장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 때부터는 실무부서의 도입 담당자와 사실상 한 팀이 되어 움직여야 합니다. 1번에서 확인한 것처럼 도입 담당자는 다른 부서의 요청사항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할 수 있고, 이 때 세일즈맨은 도입 담당자가 언제든지 찾고 다른 부서의 검토사항을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도입 담당자가 내부 검토 중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언제든지 세일즈맨을 찾아 해결 가능하다는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죠.
콜라보의 예시로 보자면, 세일즈맨은 제품 기능 및 가치뿐만 아니라 보안 및 인프라 / 법적 이슈까지도 커버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입 담당자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세일즈맨을 믿고 많은 정보를 알아봐주고, 같이 검토를 진행해 최종적으로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죠.
엔터프라이즈 대기업 세일즈에서 중요한 점은, 반드시 검토 담당자와 한 팀이 되어 긴 검토 과정을 같이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5. 시행착오에서 배우기
이 모든 내용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엔터프라이즈 대기업들을 만나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이론과 실제 격차가 크다는 점을 느끼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엔터프라이즈 영업 건은 매 건마다 큰 매출을 가져다주는 만큼, 반드시 세일즈 과정을 경험하고 성공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인지하고, 무언가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좌절하지 말고 나의 액션을 분석해야 합니다. 콜라보팀의 예를 들자면, 고객과 통화로 논의한 내용이나 이메일 등을 모두 콜라보 및 CRM (Pipedrive)에 저장하고, 통화나 이메일의 내용이나 액션 중 어느 부분을 개선할 수 있을 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전에 적용해보고 있습니다. 특히 대기업과 일을 진행하다 보면, 통화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콜라보를 사용한 통화 분석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대기업 딜을 진행할 수 없으니, 내가 했던 액션을 분석하고 개선해 실전에 적용해보고, 다음 번 영업 기회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한 내용을 적용하는 것이죠. 몇 번의 실수가 쌓이고 실수를 계속해서 개선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황별로 대응할 수 있는 세일즈 매뉴얼 (플레이북)이 만들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대기업 세일즈를 처음 경험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시행착오가 발생한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하고, 시행착오를 개선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세일즈를 진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