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SaaS 제품을 대기업에 영업하기 위한 내부 소통
지난 글에서는 커리어 처음으로 초기 B2B SaaS 제품인 콜라보를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에 영업하면서 느낀 점을 작성해봤는데요, 실제로 엔터프라이즈 대기업과의 영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내부 제품팀의 기능 개발 지원부터 보안 검토까지 외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내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업 또한 필수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성공을 위한 효과적인 내부 소통 방법을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상황에 해당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좋습니다.
초기 제품을 고객에게 판매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영업 담당자 혹은 창업자
대기업 고객의 요구사항이 너무 많아 어떤 것부터 처리할지 모르는 영업 담당자
영업 타겟을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으로 변경하려는 영업팀 관리자 혹은 스타트업의 경영진
1.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회사의 방향성부터 점검하기
그 어떤 소통 방식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회사와 제품이 정말 엔터프라이즈를 타겟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한 영업팀의 판단이 아닌, 회사 전체의 공감대가 필요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엔터프라이즈 제품은 본질적으로 커스터마이징을 필요로 합니다.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대기업의 복잡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커스텀이 불가피합니다. 심지어 우리 제품이 커스터마이징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제품일 경우라도, SMB(중소기업)용 제품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져가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회사가 엔터프라이즈를 주요 타겟으로 보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규모의 영업 기회가 와도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SMB를 위한 제품과 엔터프라이즈를 위한 제품은 개발 방향성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엔터프라이즈 세일즈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회사 전체와 방향성을 맞춰야 합니다. 이러한 사전 합의가 없다면, 영업 과정에서 끊임없는 내부 설득이 필요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제품팀이나 기술팀과 같은 핵심 부서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내기 어렵게 됩니다. 수십억 단위의 대규모 거래도 회사의 방향성이 맞지 않으면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엔터프라이즈 기능 요청 대응 - 상세한 배경 공유
엔터프라이즈 대기업과 미팅을 진행하고 나면, 항상 다양한 커스텀 요구사항이 쏟아집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의 요구사항이 일반 중소기업(SMB)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보안 관련 기능입니다.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에서는 거의 필수적으로 Audit Log(감사 이력) 기능을 요청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닙니다. 수많은 부서와 담당자들이 얽혀있는 대기업의 특성상, 모든 사용자의 액션을 추적하여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구사항입니다. 이외에도 기업 내 SSO(Single Sign-On) 연동과 같은 보안 관련 커스텀 요구사항은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제품은 대개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핵심 기능만을 구현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Audit Log나 SSO 연동 같은 엔터프라이즈급 기능들은 아직 백로그에만 있거나, 때로는 요청조차 받지 못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당 기능의 개발 우선순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영업 담당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위와 같은 기능 요청 시 핵심은 '상세한 맥락 공유'입니다. 단순히 "고객사가 이런 기능을 요청했다"가 아니라, 왜 이 기능이 필요한지, 기능이 없을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해당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이 기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A부터 Z까지 상세하게 내부에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의 개발팀이나 제품팀은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의 특수한 상황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세한 맥락 공유는 단발성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회사와 제품이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을 타겟하기로 결정했다면, 지속적으로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의 조직 구조와 의사결정 프로세스, 보안 정책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내부 팀들이 엔터프라이즈 고객의 요구사항을 더 깊이 이해하고, 적절한 우선순위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죠.
3. 엔터프라이즈 기능 요청, 고객의 진짜 문제 파악하기 (JTBD)
엔터프라이즈 영업 건에서는 매 건마다 억 단위의 매출이 발생합니다. 이는 축하할 일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대규모 매출에 현혹되어 특정 기업만을 위한 맞춤형 기능 개발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업무 환경과 프로세스에 맞춘 기능을 요청합니다. 예를 들어 Audit Log의 경우, 어떤 기업은 로그인 이력과 데이터 삭제 추적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기업은 시스템 내 모든 액션(데이터 생성/수정/삭제/조회)을 추적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죠.
이러한 상황에서 영업 담당자는 단순히 고객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왜(Why)" 라는 질문을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왜 이 기능이 필요한지, 어떤 배경에서 이런 요구사항이 나왔는지, 이 기능을 통해 실제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요청 사항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 없이 고객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특정 기업에만 필요한 기능을 개발하느라 귀중한 개발 리소스를 낭비할 수 있습니다. B2B SaaS의 가장 큰 장점인 제품의 확장성이 저해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하나의 고객사는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 제품의 발전은 더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엔터프라이즈 영업 담당자는 고객의 진짜 문제(Jobs-to-be-done)를 파악하고, 그것이 우리 회사만의 특수한 요구사항이 아닌 다른 기업들도 공통적으로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점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렇게 파악된 정보를 내부에 공유할 때, 제품팀은 더 확신을 가지고 해당 기능의 개발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에서 영업 담당자는 단순한 영업 사원이 아닌, 고객의 진정한 문제를 발굴하고 해석하는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4. 엔터프라이즈 내부 설득, 원본 데이터 활용하기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엔터프라이즈 대기업의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내부 팀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아무리 잘 알고 있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특히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경험이 부족한 조직이라면 더욱 그렇죠.
이런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바로 고객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팀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영업 담당자의 주관적 해석이나 요약이 아닌, 고객이 실제로 말한 내용을 원본 그대로 팀과 공유하는 것이죠.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팀 전체가 고객의 상황과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를 위해 실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미팅 내용을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AI 회의록 솔루션을 활용해 미팅 내용을 자동으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팀 전체가 고객의 실제 발화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객이 이런 요구를 했다"라는 간접 전달이 아닌, "고객이 이렇게 말했다"라는 직접적인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본을 팀과 같이 분석하고,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오판의 여지를 최대한 팀과 함께 제거하는 것이죠.
더불어, 원본 데이터만으로도 맥락 이해가 부족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추가 정보를 확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객사의 현재 업무 프로세스에 대한 추가 정보나 시스템 구성현황 등 기능 개발을 위한 보충 정보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가 정보들은 팀이 고객의 요구사항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료가 될 수 있죠.
결국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수집하느냐뿐만 아니라,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팀과 공유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고객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이를 팀 전체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엔터프라이즈 세일즈 성공을 위한 내부 설득의 핵심입니다.